
타워 빈스토크, 높이 2408m 674층 인구 50만의 거대한 빌딩이자 독립된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도시국가, 사용하는 언어와 인종도 동일한 어떤 나라의 수도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주제에 그런 나라에게도 비자면제를 불허한 각박하기 그지없고 엘리베이터 한층 올라가는데 에도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철저하게 자본의 힘으로 돌아가는 공간, 그 거대한 바벨탑은 하나의 축소된 대한민국이다. 강력한 공권력이 사회를 지배하며 시민들은 그 힘을 인지하지 못 하면서도 그 힘을 피부로 느낀다. 그 힘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 힘에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력한다. 사람들은 그렇데 권력의 부정함에 혐오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권력을 향하여 부나방처럼 날아든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사람은 산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대가 없는 도움, 이유도 없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그저 도움을 줄뿐이다. 굿이 여기서 보르리야르의 상징적 교환의 개념을 들이 댈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빈스토크의 냉혹하고 계산적인 사회에서도 사람은 살고 결국 희망은 사람들 간의 유대이다.
사실 이 책을 얼마 전에만 읽었더라면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때는 자본시장에 대한 입장이 명료하지 않았고 이 책을 해석할 그럴듯한 툴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읽은 책이 『상처받지 않을 권리』란 책이었는데 바로 이 책이 내가 자본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공해주었다. 꽤 전에 읽은 『고민하는 힘』과 함께 나의 자본시장에 대한 시각을 한층 더 높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고민하는 힘이 나츠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들어 주체적인 우리를 자본화 시키고 소외하는 자본주의의 풍랑에 맞서 스스로 일어 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우리를 나로 객체화 시키는 자본의 힘에 상처 받은 문인 사인과 그 상처를 깊이 있게 바라본 사상가 사인 그리고 그들의 치열한 투쟁의 근원이 된 여러 인물들의 살과 고민들을 들어 자본시장이 우리를 어떻게 소외시키고 상처 주는지를 알아보고 이런 지본의 위협에 우리가 그리고 내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내가 소설 『타워』를 읽는데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본문들도 중요하지만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장은 책의 주제를 정통으로 관통하고 있는 마지막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카페 빈스톡킹(Cafe Bean's Talking)이 아닐까 한다. 이 장을 읽다 보면 과연 권력과 결탁한 자본이 어떻게 사회유대를 붕괴시키고 자유라는 미명아래 사람을 객체화 시키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자본이 사람 공동체에 시장의 논리를 가지고 들어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의 유대를 어떻게 가로막고 끊어 놓는지를 보여주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려준다. 최근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 장을 관통하는 주제가 얼마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촌극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읽어 내야할 또 하나의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동체 정신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뿐만 아니라 본문의 ‘타클라마칸~’에서도 마찬가지로 희망을 그려내었는데 그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와 사랑이다. 작가는 말한다. 과연 이렇게 냉혹하고 잔인하게 다가오는 현실에 우리가 대처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대가 없는 사랑, 사람 냄새나는 유대감 그리고 공동체주의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에게 희망은 사람이다.



덧글
ㅌㅇㅀ 2009/08/14 09:10 # 삭제 답글
줄나눔이 이상해요
라헬군 2009/08/17 21:04 # 답글
고쳤습니다.